
최고의 부는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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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도 알파니 지음
- 최정숙 옮김
- 2025년 7월 25일
- 152×225
- 528쪽
- 979-11-93638-88-0 03320
- 30,000원

책 소개
인간들 사이에서 신으로 군림한 자들, 슈퍼리치!
그들은 어떻게 부를 쌓고, 지켰으며, 지배했는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부자들은 언제나 찬사와 분노 그리고 관심의 대상이었다. 전염병과 기근, 전쟁과 금융 위기 속에서 누군가는 무너졌고, 누군가는 부자가 되었다. 슈퍼리치는 단순히 돈만 많은 부자가 아니다. 그들은 시대를 이끌었고, 제도를 만들었으며, 종종 국가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유했다. 중세의 왕과 귀족, 근대의 상인과 금융인, 현대의 테크 재벌까지, 수천 년에 걸친 슈퍼리치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그들이 사회와 맺어온 복잡한 관계를 추적한다.
이 책은 특정 시대의 억만장자를 나열하는 단순한 부자 열전이 아니다. 오히려 알파니는 “누가 부자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각 시대의 경제·사회 구조를 꿰뚫고, 부의 원천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밝힌다.
메디치 가문, 로스차일드, J.P. 모건, 록펠러,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슈퍼리치부터 우리가 몰랐던 중세 시대의 슈퍼리치와 극히 드문 여성 부자들, 빈손으로 시작해 거대한 부를 쌓은 사업가들과 위험천만한 모험을 택한 대가로 수백 년 동안 이어지는 부자 가문을 만든 창시자들, 위대한 개츠비를 무색하게 만드는 미국 도금시대의 슈퍼리치 이야기는 넷플릭스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다. 부자, 그것도 슈퍼리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도 흥미롭다. 과시할 것인가, 숨길 것인가, 베풀 것인가, 움켜쥘 것인가, 그들을 배척할 것인가, 그들을 이용할 것인가? 슈퍼리치는 그 존재만큼이나 무게감 있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제까지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슈퍼리치의 역사를 오랫동안 집요하게 파고든 수년에 걸친 저자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인류사에 길이 남은 슈퍼리치의 족적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면 《Financial Times》, 《New Yorker》, 《New Statesman》 등 유력 매체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토마 피케티, 월터 샤이델, 브랑코 밀라노비치 등 세계적인석학들이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 서평 |
극한의 부를 쌓은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세계
그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으며,
우리는 왜 그들에게 열광하고 분노하는가?
세상에는 언제나 부자를 보는 2가지 시각이 존재했다. 때로 부자들은 그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질시와 비난을 넘어 사회에 해를 끼치는 자로 추방의 위협을 받아야 했고, 때로 사회가 재앙과 위기에다음의 인용문에서 보듯, 이런 이중 잣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와 같이 지나친 부는 해악과 반란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모든 법은 정당하고 효과적이다. 또한 모든 시민의 재산이 동등하거나 아니면 너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 모두 공동체에는 좋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법들은 공익에 기여한다. 한 사람이 상속 또는 기타 방법으로 일정액 이상의 재산을 가질 수 없도록 확립하는 법이 될 것이다.”
– 오레스메, 프랑스 샤를 5세 고문, 312쪽
“당신은 탐욕스러운 자들을 최악의 범죄자 취급을 하며 도시에서 추방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들의 존재가 장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병자와 약자를 돕고,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며,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풍부한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전통을 가진 도시들에서는 공공 기부를 통해 밀을 배급할 공공 곡물 창고를 세우는 것이 관례이듯이, 탐욕스러운 자들을 그 자리에 두어 그들이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종의 ‘돈 곳간’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도 매우 유익할 것이다. 사실 도시가 어려움에 처한다면, 가난한 노동자들이나 부를 경멸하는 사람들에게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탐욕스러운 부자들(탐욕 없이 부를 축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에게 의지할 것인가? 과연 어떤 사람들로 도시가 가득 차 있는 것이 더 나은 일인가? 자신과 타인을 부양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진 부자들인가, 아니면 남들을 돕기는커녕 스스로를 돌보기도 힘든 가난한 사람들인가?”
- 포지오 브라치올리니, 『탐욕에 대하여』
오늘날의 세계는 ‘두 번째 황금기’라 불릴 만큼 극단적인 부의 집중을 겪고 있다. 상위 1%가 전 세계 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소유한 지금, 슈퍼리치들은 자신들의 부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세상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선보인 초호화 결혼식은 극단적인 찬반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회자됐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귀족들 또한 상식을 뛰어넘는 화려한 결혼식과 사치품, 호화로운 건축물로 그들의 위신을 과시했고, 이러한 과시는 오히려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었다.
슈퍼리치,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최고의 부는 어디서 오는가』는 단순한 부자 이야기, 혹은 경제 지표의 나열이 아니다. 경제사학자 귀도 알파니는 수천 년의 서구 역사 속에서 부자들은 어떻게 등장했고, 어떻게 ‘부자가 될 자격’을 획득했으며, 어떻게 부를 세습하고 정당화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중세의 왕과 귀족, 르네상스 상인과 금융인, 산업 자본가들, 현대의 테크 억만장자까지, 부자들은 단순히 자산을 축적한 존재가 아니라, 시대를 이끌었고, 제도를 만들었으며, 종종 국가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유했다.
로마 시대에는 여섯 명의 부자가 아프리카의 약 절반을 소유했다고 하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팔라스는 당시 황제였던 네로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11세기 당대 최고의 부자로 손꼽힌 잉글랜드의 귀족 앨런 더 레드의 토지에서 나오는 수입은 당시 잉글랜드 국민 총 순소득의 약 7.3%를 차지했다. 19세기의 제이 굴드는 미국 철도의 15%를 통제하고 있었고, 21세기를 대표하는 최고 부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2020년 3월부터 8월까지 불어난 재산만 가지고도 아마존의 87만 6,000명의 직원들에게 1인당 10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부를 축적했다. 이처럼 부는 언제나 집중되어 있었지만, 그 집중의 정도는 산업혁명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고, 21세기 들어 다시 한 번 절정에 이르고 있다.
『최고의 부는 어디서 오는가』에 따르면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유럽의 슈퍼리치 다수는 귀족 출신이었으며, 20세기에는 상업과 금융으로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 부자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간, 상속을 통해 부를 대물림하는 부자들의 비율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으며, 상위 0.1%의 부의 집중도는 1929년 대공황 직전 수준을 능가하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불평등, “우리는 부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실망하는가?”
흑사병과 세계대전 시기를 제외하면, 부의 불평등은 수세기에 걸쳐 꾸준히 심화되어왔다. 유럽은 14세기 흑사병 이후 일시적으로 평등해졌지만, 15세기부터 불평등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산업혁명과 함께 금융업이 부상하면서, 과거의 귀족 대신 기업가와 금융인이 새로운 슈퍼리치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들은 단순한 ‘부자’를 넘어, 제도와 권력을 움직이는 존재로 성장했다.
반면 미국은 출발부터 다소 달랐다. 귀족과 세습 특권층의 부재로, 건국 초기의 미국은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였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이후의 산업화, 철도 개발과 금융 시스템의 급속한 발달은 부의 불평등을 가속화시켰다. 오늘날 미국은 전 세계 슈퍼리치의 절반 이상을 배출하며, 가장 불평등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부의 집중은 더 이상 과거 귀족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최고의 부는 어디서 오는가』는 이처럼 부의 역사적 흐름과 집중 현상을 추적하며, 로스차일드, 푸거, 메디치처럼 ‘가문’을 이룬 전통의 슈퍼리치부터,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이조스 같은 현대의 테크 억만장자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부자의 탄생과 변화 그리고 그들이 사회에서 차지했던 복합적 위치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알파니는 데이터와 통계, 철학과 정치, 개인과 제도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그려내며, 단순히 부유한 개인들의 행적이 아닌 ‘부’라는 사회적 구조의 기원을 조명한다.
소비는 사치, 저축은 축적?! 슈퍼리치의 딜레마
과거 서구 사회에서 부자는 늘 의심과 비판의 대상이었다. 중세의 수도사들은 부자를 죄인으로 여겼고, 공공의 이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자는 추방 대상이었다. 하지만 전염병, 전쟁, 흉작과 같은 사회적 위기가 닥쳤을 때, 부자들은 ‘구원자’의 역할을 맡았다. 기부, 세금 납부, 기반시설 건설, 대출 제공 등을 통해 그들은 공동체에 기여했고, 이를 통해 존재의 정당성과 사회적 신뢰를 획득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떤가? 그들은 팬데믹과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도 자산을 보존하는 데 성공했지만, 공동체를 위한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 알파니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적으로, 부자들이 사회에 기여하지 않을 때 그리고 그들이 대중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그 고통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것을 보이거나 그런 의심을 받을 때, 사회는 불안정해지며 폭동과 봉기로 이어진다.” 일시적인 증세조차 ‘부자에 대한 전쟁’으로 간주되며, 오히려 공공의 세금을 통해 자신들의 손해를 메꾸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자들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과거 부자들이 ‘책임 있는 계급’으로 기능하며 정당성을 확보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그 정당성이 무너지고 있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금을 내느니 기부를 하겠다”는 말은 단순한 말뿐인 선언이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부자들은 기부를 통해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하고, 세금은 회피한다. 저자는 ‘선의’와 ‘의무’ 사이의 역사적 논쟁을 날카롭게 짚어내며, 그 배후에 숨은 권력의 논리와 사회계약의 변화를 드러낸다. 이 책은 단지 과거를 조명하는 역사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최고의 부는 어디서 오는가』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슈퍼리치의 권력, 정당성 그리고 책임의 역사를 파헤친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의 부자들은 과연 존재할 자격이 있는가? 더 이상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부자들이 세계를 지배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장기적 관점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는 통찰을 제공하며, 미래를 위한 중요한 교훈을 전하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저자
“서구 역사를 관통하는 이 거대한 탐구 속에서 알파니는 부자들이 어떻게 부를 얻고, 사용하며, 때로는 잃었는지를 추적한다. 현대 불평등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다.”
– 발터 샤이델, 『불평등의 역사』 저자
“귀도 알파니는 다양한 서구 사회를 아우르며 초부유층의 역사를 독창적인 시각과 치밀한 연구로 풀어낸다. 이 책은 역사학자뿐 아니라, 경제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모두에게 귀중한 자원이다.”
― 재닛 C. 고르닉, 뉴욕시립대 사회경제불평등연구소 소장
| 책 속으로 |
고대의 불평등을 관측하고 측정하는 것은 고전고대시대 이후부터는 다소 수월해진다. 로마가 지배한 지역에서 부의 집중 현상은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까지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보이며, 이 기간 최고 재산의 규모는 400~500만 세스테르티우스(고대 로마에서 사용된 동전 - 옮긴이)에서 3~4억 세스테르티우스로 80배 증가했다. 네로 황제(기원후 54~68년 통치) 당시에는 여섯 명이 대략 오늘날의 튀니지와 리비아 해안에 해당하는 아프리카 지방의 약 절반을 소유했다고 한다(적어도 황제가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당시 최고 부자는 아마도 그리스 노예 출신이었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팔라스였을 것이다. 그는 제국 정부의 최고위직에 올라, 클라디우스 황제와 네로 황제 휘하에서 재무 장관을 지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에 따르면, 팔라스의 개인 재산은 3억 세스테르티우스로 아우구스투스 황제 당시 황가가 소유했던 2억 5,000만 세스테르티우스보다 많았다. 그리고 네로 황제가 팔라스를 독살하고 그의 재산 대부분을 몰수하도록 지시할 때까지는 아마 네로보다도 재산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공화국 말기에 엄청나게 부유한 것으로 알려졌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소유 재산은 2억 세스테르티우스였다. 그는 기원전 60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 힘을 합쳐 제1차 삼두정치를 구축하며 자신의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정치적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추산에 따르면 크라수스의 자산에서 나오는 연간 수입은 로마인 3만 2,000명을 부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54쪽
19세기 동안 부의 분배에 대한 연구가 가장 폭넓게 실시된 나라인 프랑스에서 전쟁 직전 몇 년 동안 상위 1%의 점유율은 54~56% 범위에서 움직였는데, 이는 우리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첫해인 1807년의 44.4%보다 최소 10%p 더 높은 수치다. 20세기 초, 프랑스 같은 유럽 대륙 국가는 여전히 미국보다 부의 분배가 훨씬 더 불균등했다. 1913년, 미국 상위 1%는 전체 부의 46.6%를 소유하고 있었던 데 반해 프랑스의 상위 1%는 1세기 전과 거의 같은 수준의 부를 누렸다. 실제로 그 해에 미국은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보다 부의 불균형이 덜 심했다. 1913년 영국에서 상위 1%의 점유율은 66.6%, 1914년 네덜란드에서는 56.5%, 1908년 스웨덴에서는 53.8%였다. 우리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유럽 국가 중에서 노르웨이만이 최상위 부유층의 부 집중도가 미국보다 낮아 1912년 상위 1%의 점유율이 37.2%를 보였다. 그러나 가장 불평등이 낮은 사례는 다른 북미 국가인 캐나다에서 보고되었는데, 이곳에서는 1902년 (온타리오 지역의 경우) 상위 1%가 전체 부의 36.4%를 소유했다. 62쪽
앨런의 상승 가도에서 정점을 찍은 사건은 199개 이상의 영지를 포함하여 리치먼드 영지를 하사받은 것이었다. 앨런은 즉시 전략적이고 쉽게 방어할 수 있는 위치에 리치먼드 성을 짓기 시작했고, 이곳은 앨런의 영지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그의 영지는 계속해서 늘어났는데, 주로 윌리엄과 그의 후계자인 윌리엄 2세에 대한 잦은 반란에서 일찍부터 승자 편에 설 줄 알았던 앨런의 능력 덕분이었다. 1080년대에 이르자 앨런 루퍼스는 의심할 여지없이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본질적으로 정보의 한계 때문에 그저 참고 정도만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추정에 따르면 그의 막대한 토지에서 나온 수입은 당시 잉글랜드 국민 총 순소득의 약 7.3%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며 앨런은 아마도 영국에서 살았던 사람 중 가장 부자였다고 볼 수 있다(보통 군주는 이런 종류의 순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요한 사실은 정복왕 윌리엄의 초기 동료 중 여러 명이 최근 작성된, 영국 역사를 통틀어 최고 부자들을 꼽는 리스트에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93쪽
이 새로운 상황은 경제적 또는 일신상의 위험에 맞설 수 있는 대담한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예를 들어, 1587년 네덜란드 북부의 항구 도시 호른 출신으로 비교적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네덜란드 상인 얀 피터르스존 쿤을 생각해보자. 양조업자로 시작해 후에 상업으로 진출한 그의 아버지는 무역의 새로운 황금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잘 이해한 듯했다. 그는 아들을 로마로 보내 7년 동안 플랑드르-이탈리아 가문인 비셔스 가문에서 견습을 받게 했다. 쿤은 그곳에서 남유럽에서 사용되던 회계 및 무역 기술, 특히 그 당시 북유럽보다 더 발전된 복식부기를 배우게 되었다. 네덜란드로 돌아온 쿤은 VOC가 야심 차게 계획하고 있던 동인도 지역으로의 원정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1607년에 보조 상인으로 합류했다. 당시 쿤이 감수했던 일신상의 위험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네덜란드를 떠나 VOC가 조직한 초기 동인도 원정에 나선 사람들의 사망률이 (한 추산에 따르면) 거의 50%에 달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쿤의 첫 번째 여행은 성공적이었고, 1612년에는 선임 상인으로 두 번째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135쪽
앤드류 카네기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1848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가난한 직조공의 아들이었다. 그의 첫 직장은 피츠버그의 한 공장이었으며, 주당 1.2달러를 받았다. 그러나 1901년, 새로 설립된 US스틸에 철강 산업에서 가지고 있던 지분을 매각할 때는 2억 2,560만 달러(2020년 기준 약 71억 달러)를 금채권으로 받았다. 그는 미국 최고의 부자였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카네기는 매우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회사 직원들을 착취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철강 공장에서는 하루 12시간 근무가 일반적이었고, 일요일에는 격주로 24시간 근무 후 하루를 쉴 수 있었다. 그는 또 노동조합에 대한 폭력과 협박, 정부 규제를 회피하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약탈적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진화론에서 끌어낸 이론을 개발하기까지 했다. 카네기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생물학자인 허버트 스펜서에게 특별한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거대한 자선가로 변모했으며, 1889년의 저서 『부의 복음』에서는 부자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가치 있는 행동은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57쪽
코시모 데 메디치는 가문의 은행을 이끌 후계자로 키워졌고, 그의 개인적인 삶도 회사의 필요에 의해 정해졌다. 이를 위해 그는 아버지의 지분 파트너 중 한 명의 조카이며 재산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피렌체 명문가 출신인 콘테시나 데 바르디와 결혼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코시모는 복잡하고 방대하게 뻗어 있는 피렌체의 혼인, 경제 및 후원 엘리트 인맥에 겹겹이 얽히게 되었다. 이는 그가 경제적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부상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제적으로 그는 메디치 은행의 이익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457년이 되자 코시모의 가문은 피렌체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으로 등극했으며, 이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해에 작성된 재산세 등록부에 따르면 그들의 재산은 두 번째로 부유한 가문보다 4배 더 많았다. 중세 시대에 흔히 그랬듯이, 그는 자신의 삶이 끝나가고 있다고 느끼자(1464년에 사망) 자선 활동을 더 늘렸다. 그에 더해 교회와 긴밀한 사업 관계를 유지해온 사람에게만 가능한 조치를 취했는데,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 기부금을 내고 교황에게서 면죄부를 받아냈다. 187~190쪽
그 후 수년 동안, 로스차일드 은행은 세 개의 주요 지점을 통해 유럽 국제 금융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공고히 했다. 가문의 경영권은 마이어 암셸의 유언에 따라 남자 후손들에게 상속되었는데, 유언에는 혼인을 통해 가족이 된 남자들은 가문 은행에 들이지 말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또한 그는 딸들도 회사 운영에서 배제했다. 이에 더해 가문의 창시자가 유대교 신앙에 충실하고 다른 종교인과 결혼하지 말라고 후손들에게 권고했기 때문에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후 수십 년 동안 가문 사람끼리 결혼을 했고, 마이어 암셸의 손주들이 맺은 18건의 혼사 중 16건은 삼촌과 조카 또는 사촌 간의 결혼이었다. 설립자의 종교적 집착 외에도 혈통 간 결혼은 외부인들에게 거액의 지참금을 지급하는 데 따른 자산 손실을 방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중세와 근대 초에는 아주 흔한 관행이었다. 209쪽
한 추산에 따르면, 1970년에서 2005년 사이 미국에서 발생한 임금 불평등 증가의 15~25%는 금융 직종 때문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금융 부문은 고임금이 상대적으로 많다. 2000년대 초 미국 금융 부문의 CEO들의 소득은 비슷한 교육 수준과 자격을 갖춘 타 부문의 CEO들보다 평균 3.5배 더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서구 국가에서 어느 정도 유사하게 나타났으며, 이에 따라 금융 부문 직원들은 상위 소득자 중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2010년 유럽 전역에서 상위 1% 고소득자 중 금융 부문 직원들이 19%를 차지했는데, 그들 숫자가 전체 근로자의 4.4%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중이 과하다고 할 수 있다. 227쪽
역사를 통틀어, 부자들은 늘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받아왔는데 한편으로는 병적일 정도의 탐욕을 보인다는 비난을, 다른 한편으로는 쾌락과 허영을 쫓아 재산을 탕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부자들은 저축과 소비 양면에서 특이한 행태를 보여왔기에, 이들의 집단적 행동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재산 축적의 핵심은 소비보다는 저축에 있었다. 부가 세대를 거쳐 상속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낭비벽 있는 이들보다는 저축 성향이 강한 이들이 가문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색함 외에는 특별한 자질이 필요 없는 극심한 부의 불평등을 사회에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앞서 살펴보았듯 중세 사회는 이러한 인색함을 죄악시했지만, 동시에 사치스러운 부의 과시 역시 비난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낭비는 구두쇠 근성만큼이나 큰 죄악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저축을 장려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서구 사회가 극도로 부유한 계층, 특히 초부유층을 대할 때 늘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던 난제였다. 234쪽
어떤 사회가 비교적 높은 경제적 불평등을 경험하게 될지 여부를 판정하는 데에는 선사 시대부터 부의 상속 가능성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수렵채집 사회와 신석기 시대 농업 혁명 이후의 모든 초기 농업 사회를 포함하는 과거와 현재의 소규모 사회에서 실제적인 경제적 불평등 수준은 그 사회의 전형적인 부의 형태에 크게 좌우된다고 주장되어왔다. 물질적 재산이 대부분이었던 목축 사회와 농경 사회는 개인의 능력과 관계가 재산이었던 수렵채집 사회보다 불평등이 훨씬 더 심화되었다. 물질적 부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를 살펴보더라도 농경 사회는 평균 0.57에 달하는 반면 수렵채집 사회는 0.36 수준에 그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활만 영위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던 이 사회들 간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은 각 사회의 전형적인 부가 어느 정도 대물림될 수 있는지 여부다. 물질적 부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능력이나 관계적 부보다 물려주기가 더 쉬우며, 땅과 가축은 수렵채집 사회의 소모적이고 일시적인 가재도구보다 세대 간 이전에 더 적합하다. 농경 및 목축 사회에서는 가축 떼, 관개 농지 등의 규모가 커질수록 수익이 증가하기 때문에 부의 축적이 더욱 촉진된다. 284쪽
최근 몇 년간 최상위 부유층 중 여성의 비율은 13~14%로 여전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는 서구 역사상 어느 때보다 높으며 2001년의 거의 두 배다. 하지만 이 데이터가 사실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2021년, 서구의 여성 억만장자 중 84.2%는 상속으로 부자가 되었지만, 상속으로 억만장자가 된 전체 인원 중에서는 약 3분의 1에 불과했다. 이는 이중적인 성차별 가능성을 드러내는 결과이며, 경제 체제 전반적으로 여성의 부 축적과 성공을 가로막는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사회적으로는 가문의 상속자로서 딸보다는 아들을 선택하는 경향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297쪽
소득 연구는 또한 자유 전문직이 더 이상 최상위 부유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유층으로 가는 유력한 경로임을 보여준다. 2005년 미국에서 의료 종사자는 전체 소득 상위 1%의 14.2%를 차지했고, 변호사는 7.7%, 교수 및 과학자는 1.8%를 차지했다. 그러나 상위 0.1%에 초점을 맞추면 이 비율은 의사의 경우 약 3분의 2, 교수 및 과학자는 약 3분의 1, 변호사는 약 4분의 1이 감소한다. 이 경향은 부유층 내 모든 구간에 걸쳐 일률적으로 나타나, 부유층 중에서도 상위 계층으로 갈수록 자유 전문직은 점차 사라지지만 하위 계층으로 내려갈수록 그들의 비율은 증가한다. 따라서 전문직은 소득과 자산 모두에서 상위 1%보다는 상위 5%에서 더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99쪽
프랑스 국왕 샤를 5세가 신뢰하는 고문이었던 오레스메는 왕의 요청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당시의 실제적 필요에 맞게 번역하고 해석하면서, 초부유층이 정치적 권력 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너무나 우위에 있어 마치 신이 인간 사이에 있는 것 같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공동체를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획득했다면 이 '신'들이 과연 처벌받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오레스메는 그의 주석에서 부유한 이들이 (정치적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사회에 치명적으로 해를 끼치고 반란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오레스메는 '민주적' 형태의 정부에 대해 논하는 가운데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사회(도시)에서는 과도한 부를 지닌 초부유층을 추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309~310쪽
세금 회피 용도로 기부를 이용하는 관행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 첫째, 기부자가 자산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후원을 통해 상당한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얻는 경우, 기부는 면세 상품과 서비스를 취득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지며 관대함과 미덕을 보였다는 주장은 순전히 위선이 된다. 둘째, 이들이 세금을 내지 않음으로써 사회 전체에 서비스나 그 외의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공공 기관의 재정 능력이 감소하게 되므로 다른 사람들의 복지를 향상시킨다는 자선의 궁극적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 367쪽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처럼 도널드 트럼프도 ‘국가에 맞선’, 성공한 기업가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 역시 베를루스코니처럼 여러 경제적・정치적 범죄와 더불어 문제의 소지가 많은 사생활로 비난받아왔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트럼프의 막대한 부와 미디어와의 연관성이 그의 정치적 부상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미국 정치 시스템에서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부보다는 지지자들이 제공하는 정치 지원금이 더 중요하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이는 또다른 문제로 이어지는데, 즉 본인은 초부유층이 아니라 해도 초부유층에게서 지원을 받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초부유층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들에 대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396쪽
2008~2009년의 대불황은 일부 국가에서는 국가 부채 위기를 불러와 2013년까지 지속되기도 했는데, 그 기간에 부유층은 많은 이들에게 사회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둔감한 것으로 비쳐졌다. 자기들의 탐욕스러운 행동으로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상위 1% 부유층은 사적 자원을 피해 완화에 보태는 부자들의 전통적 역할을 집단적으로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와 같은 비판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감염 억제를 위해 실시된 공중 보건 정책으로 인한 경기 침체로 다시 불붙었다. 물론 이번에는 줄기찬 음모론자들을 제외하고는 부유층이 위기를 초래했다고 비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몇몇 국가에서는 위기 이전의 정책, 예를 들어 공공 보건 서비스의 민영화 같은 정책이 문제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민영화는 부유층에게만 이익을 제공하며 사회 전체의 팬데믹 대응 능력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유층이 해결책을 찾기 위한 비용 부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또 다른 비판은 대불황 시기에 제기되었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456쪽
목차
서문
1부 소수의 손에 쥐어진 부
1장 부란 무엇이며, 얼마가 있어야 부자인가
2장 부의 집중과 부자의 규모
2부 부자가 되는 길
3장 부의 상속자들: 새로운 귀족의 탄생
4장 새로운 부의 동력: 혁신과 기술
5장 부자가 되는 지름길: 금융업
6장 부자들의 딜레마: 저축과 소비
7장 부의 정상을 향하여
3부 부자의 사회적 역할
8장 부의 집중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이유
9장 후원자, 자선가, 기부자
10장 초부유층과 정치
11장 위기의 시대와 부자: 흑사병부터 코로나19까지
맺음말
감사의 말
주
도표 출처 및 참고문헌
저자
| 저자 소개 |
귀도 알파니Guido Alpani
귀도 알파니는 밀라노 보코니대학교 경제사 전임교수로, 경제 불평등, 사회 이동성, 인구 및 전염병의 역사에 중점을 둔 연구를 수행해왔다. 유럽연구위원회ERC의 지원을 받아 EINITE, SMITE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유럽경제사학회EHES 이사이자 《Genus》, 《Explorations in Economic History》, 《European Review of Economic History》 등 주요 저널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다티니 재단과 포스트휴무스 연구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재난과 경제: 네 명의 기사와 함께한 대재난의 대여행Calamities and the Economy in Renaissance Italy: The Grand Tour of the Horsemen of the Apocalypse』의 저자이며, 『사자의 몫: 불평등과 전근대 유럽에서의 재정 국가의 부상The Lion’Share: Inequality and the Rise of the Fiscal State in Preindustrial Europe』의 공동 저자다.
| 역자 소개 |
최정숙
이화여대 독문과 졸업. 한국외신기자클럽 사무국장을 역임하였으며 로이터통신 온라인 선임기자로 근무하였다. 현재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고 있으며 대표 번역서로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 딸 알파걸로 키우기』, 『초설득』, 『이주하는 인류』 등이 있다.